제246호

이케아는 책장에 남자 이름을 붙여요

직접 진행한 네이밍 워크숍과 이케아·키미의 사례를 통해, 후보보다 기준을 먼저 정하는 방법을 살펴봅니다.

비즈니스이케아는 책장에 남자 이름을 붙여요

이름보다 기준을 먼저 정하면 회의가 짧아져요

저는 GTM 전략을 짜면서 제품명, 요금제명, 기능명을 정하는 워크숍을 여러 번 진행해봤어요. 기능이 무엇인지에는 합의했는데 이름을 고르는 데서 회의가 길어지는 일이 있었어요. 후보를 더 받아도 쉽게 끝나지 않았고요.

화이트보드에 후보 40개를 붙여놓고 어느 것이 좋은지 물으면 취향에 따라 답이 갈려요. 그래서 저는 후보를 받기 전에 어떤 종류의 이름을 쓸지 먼저 합의하는 쪽으로 순서를 바꿨어요. 제 워크숍에서는 그렇게 후보를 40개에서 6개로 좁힌 뒤 15분 만에 결정을 마친 경험도 있어요.

이케아의 제품명 규칙을 읽으며 이 경험이 떠올랐어요. 이케아는 매년 약 2,000~3,000개 새 제품에 이름을 붙인다고 해요. 그 많은 이름을 정할 때 제품 종류와 단어의 조건을 미리 정해두고 있어요.

책장에는 남자 이름, 소파에는 스웨덴 지명

이케아의 공식 설명은 제품에 스웨덴어 이름을 쓴다고 해요. 예시로 소파에는 스웨덴 지명, 책장에는 남자 이름, 어린이 제품에는 동물과 자연 관련 이름을 제시해요.

제품명이 되기 위한 조건도 적혀 있어요.

  •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여야 해요.
  • 길이는 4~12자여야 해요.
  • Å, Ä, Ö가 들어가는 것을 선호해요.
  • 말했을 때 느낌이 좋아야 해요.
  • 이미 상표로 등록된 이름이나 성씨는 피해야 해요.

여기서 남자 이름은 성씨와 구분돼요. 빌리처럼 개인의 이름을 뜻해요. 후보는 다른 언어에서 원치 않는 뜻이 되거나 정치·종교와 부적절하게 연결되지 않는지도 검토한다고 해요.

반면 서비스와 기능은 각 나라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이름을 쓴다고 해요. 제품에는 스웨덴 정체성을 담되, 고객이 이용 방법을 알아야 하는 곳에서는 명확한 설명을 우선하는 거예요. 이케아의 제품명 규칙

저는 이 구분이 실무에 도움이 된다고 봐요. 모든 이름이 독창적일 필요는 없어요. 제품을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과, 눌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기능명은 역할이 다르니까요.

카테고리를 정해두면 책장 이름을 논의하다 갑자기 항해 용어나 추상적인 감정 표현까지 후보를 넓힐 필요가 줄어요. 여전히 좋은 후보를 찾고 검토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단어를 놓고 고르는 것보다는 결정할 범위가 작아져요.

같은 기능에도 여러 이름이 나올 수 있어요

개발자들이 변수나 함수 이름을 짓는 연구에서도 선택이 쉽게 일치하지 않았어요. 드로르 파이텔슨 연구팀의 연속 실험에는 총 334명이 참여했어요. 첫 실험의 47개 명명 상황에서 두 사람이 같은 이름을 선택할 확률의 중앙값은 6.9%였어요. 특정 실험 상황에서 나온 수치이며, 모든 개발팀의 합의율을 뜻하지는 않아요. How Developers Choose Names

연구팀은 이름을 정하는 일을 세 가지 선택으로 설명해요. 어떤 개념을 담을지, 그 개념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단어들을 어떻게 조합할지예요. 같은 기능을 이해해도 강조하는 개념이나 고르는 단어가 다르면 이름도 달라질 수 있어요.

다른 이름을 제안했다고 상대가 기능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 수 있어요. 반대로 같은 이름을 썼다고 모두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고 안심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저는 후보를 투표에 부치기 전에, 그 이름이 무엇을 알려줘야 하는지부터 맞추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가령 요금제명은 등급 차이를 알려줘야 하고, 기능명은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줘야 해요. 내부 프로젝트명은 팀이 서로 대상을 구분하면 될 수 있어요. 같은 기준으로 세 가지를 평가할 이유는 없어요.

키미의 요금제는 음악 용어로 묶여 있어요

최근 눈에 들어온 사례는 문샷AI의 키미(Kimi) 요금제였어요. 한국어 도움말에도 이름은 알파벳 그대로 나와 있어요.

요금제월간 결제 가격
Moderato19달러
Allegretto39달러
Allegro99달러
Vivace199달러

연간 결제의 월 환산 가격과는 구분한 금액이에요. 키미 요금 안내

이 이름들은 악보에서 연주 빠르기나 성격을 나타내는 이탈리아어 용어예요. 저는 같은 계열의 단어로 등급을 묶은 점이 좋았어요. 빠르기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보통 빠르기에서 더 빠른 쪽으로 올라가는 구성을 알아볼 수 있거든요.

다만 모든 고객이 음악 용어를 아는 것은 아니에요. 이름만으로 등급 설명을 없앨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가격과 사용 한도, 기능 차이를 함께 보여줘야 해요. 제가 익숙하게 읽는 이름이 고객에게도 익숙한지 따로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소리도 살펴봐야 해요. Allegretto와 Allegro는 앞부분이 비슷해요. 화면에서 나란히 읽을 때는 구분해도 상담이나 구두 설명에서는 혼동할 수 있어요. 실제 혼동이 얼마나 생기는지는 사용자를 만나 확인해야 하고요.

음악 용어에는 다른 후보도 있으니 이름을 추가할 여지는 있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등급이 기존 고객에게 어떻게 이해될지까지 이름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이 사례에서 통일된 규칙의 장점과 고객에게 필요한 설명을 함께 봤어요.

규칙을 만들 때는 추가와 교체도 생각해야 해요

이름 규칙이 있어도 규모가 커지거나 사용 환경이 바뀌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세계기상기구(WMO)의 대서양 열대폭풍 이름이 한 사례예요.

기본 목록의 이름을 모두 쓴 2005년과 2020년에는 그리스 알파벳을 추가 이름으로 사용했어요. 하지만 2021년 3월 위원회는 이 방식을 중단했어요. 그리스 문자 자체가 위험 경보보다 주목받고, 언어를 바꿀 때 혼동이 생기며, 제타·에타·세타처럼 비슷하게 들리는 이름의 폭풍이 동시에 존재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큰 피해를 낸 그리스 이름을 더 이상 쓰지 않을 때의 절차도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위원회는 에타와 이오타를 퇴출하고, 개별 이름을 교체할 수 있는 보조 목록을 만들었어요. 그리스 문자를 세상에서 없앨 수 없어서가 아니라, 명명 체계 안에서 해당 이름을 빼고 다음 이름을 넣는 방법이 필요했던 거예요. WMO의 2021년 결정

구글은 2019년 안드로이드의 공개 버전명을 디저트 대신 숫자로 바꿨어요. 일부 언어에서는 L과 R의 발음을 구분하기 어렵고, 디저트 이름에 익숙하지 않으면 버전 순서를 알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어요. 다음 버전은 Android 10으로 불렀고요. 구글의 이름 변경 설명

두 사례를 보면 이름끼리 규칙이 맞는지만으로는 부족해요. 서로 구분되는지, 새로운 이름을 더 넣을 수 있는지, 문제가 된 이름을 교체할 수 있는지도 봐야 해요.

바꾸지 않는 편이 나은 이름도 있어요

반대로 변경 자체가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유니코드는 한 번 부여한 문자의 공식 이름을 바꾸지 않는 정책을 지켜요. 기존 소프트웨어가 그 이름을 식별자로 사용하기 때문이에요. 이름에 오타가 있더라도 원래 이름을 지우기보다 정정 별칭을 추가하는 방식을 써요. 유니코드 안정성 정책

이것을 이름 짓기에 실패한 뒤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오류를 바로잡는 편의보다 이미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데이터의 호환성을 우선한 선택이에요.

제품 이름도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화면의 이름을 바꾸는 건 쉬워 보여도 계약서, 청구서, 도움말, 고객의 검색 기록에는 예전 이름이 남아요. 개발자가 쓰는 API의 이름까지 같다면 수정 범위가 더 커질 수 있고요.

그래서 이름을 정할 때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을 유지할지 구분하면 좋아요. 고객에게 보이는 표시 이름은 바꿀 수 있게 하되, 내부에서 대상을 식별하는 값은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도 있어요. 이름이 바뀐 뒤 예전 이름으로 찾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안내할지도 정해야 해요.

이름을 정하고 구분하는 과정을 다룬 이미지

오스왈드의 시선

제 워크숍에서 회의가 짧아진 건 더 멋진 후보가 갑자기 나와서가 아니었어요.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에 먼저 합의했기 때문이에요. 각자의 취향을 설득하는 대신 그 이름이 정해둔 역할과 조건에 맞는지 비교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규칙을 만들 때 다음을 먼저 정하려고 해요.

먼저 정할 것예시 질문
쓰는 사람과 장소고객 화면인가요, 내부 회의인가요?
이름이 알려줄 정보기능인가요, 등급인가요, 브랜드의 성격인가요?
허용할 표현설명형 단어를 쓸까요, 특정 주제의 이름을 쓸까요?
구분 방법소리로 들어도 다른 이름과 구별되나요?
변경 방법이름을 추가하거나 없애면 기존 고객에게 어떻게 알리나요?

브랜드 이름을 고르는 회의에 기능명 규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어요. 책장의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정하는 방식도 요금제에 그대로 옮길 필요는 없고요. 참고할 점은 조건을 먼저 합의해 선택 범위를 줄였다는 데 있어요.

지난 호에서 URL을 다루며, 오래 쓸 주소에는 변하기 쉬운 정보를 신중하게 넣어야 한다고 썼어요. 이름도 비슷해요. 한 번 정한 뒤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쓰일지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제외할 후보가 생겨요.

AI가 후보를 많이 만들어줘도 이 결정은 남아요. 어느 단어가 더 멋진지 묻기 전에 우리 고객이 그 이름을 보고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정해야 해요. AI에는 그 조건에 맞는 후보를 만들고, 비슷한 이름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표현을 찾아달라고 시킬 수 있어요. 상표나 다른 언어의 의미는 별도로 검토해야 하고요.

구독자님 팀에서 자주 이름을 붙이는 대상 세 가지를 골라보세요. 각각 어떤 역할의 이름이 필요한지, 어떤 표현을 쓸 수 있는지 한 줄씩 적어보면 좋아요. 후보 목록보다 그 짧은 기준이 다음 회의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 이해하기 쉬웠던 제품명이나 요금제명이 있나요? 반대로 이미 널리 쓰여서 바꾸기 어려워진 이름이 있다면 그 경험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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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 (오스왈드)은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INLEVEL9 전략 컨설턴트입니다. 경력, 연구, 저서와 최신 활동은 저자 소개에서 계속 갱신합니다. 최근 소식 · 2026년 8월: 2026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