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호

프랑스가 전화를 끈 날, 한국은 두 배

거부 등록에서 사전 동의로, 연락처 명단의 가치가 달라져요

비즈니스프랑스가 전화를 끈 날, 한국은 두 배

프랑스가 영업전화 거부 명단을 없앤 날

오늘 프랑스에서 무단 영업전화가 금지됐어요. 여기까지는 아마 뉴스로 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금지보다 그 옆에서 조용히 함께 사라진 것에 눈이 갔어요. Bloctel1이라는 거부 등록 명단이에요. 2016년에 만들어져 10년을 버틴 이 목록이, 오늘 자로 없어졌어요.

구독자님, 순서를 뒤집어 읽으면 이 사건의 성격이 달라져요. 프랑스는 전화를 막았다기보다, 소비자가 스스로 이름을 올려야 했던 명단을 폐기했어요. 전화를 거부하는 노동이 소비자에게서 사업자에게로 넘어간 거죠.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오늘 바뀐 건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아웃바운드 영업의 자산 구조예요. 동의는 한 번 받아두면 쌓이는 재산이 아니라, 1년이면 만료되는 재고가 됐어요. 그리고 같은 시각 한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사라진 건 전화가 아니라 Bloctel 명단이었어요

근거는 2025년 6월 30일 제정된 법률 제2025-594호 제13조예요. 시행일이 오늘, 2026년 8월 11일이고요. 흥미로운 건 이 조항이 실린 자리예요. 소비자보호법 개정이 아니라 공공보조금 사기 방지법에 얹혀서 통과됐어요. 프랑스 정부가 이 문제를 소비자 불편이 아니라 사기 인프라로 봤다는 뜻이에요.

배경에는 축적된 불만이 있어요. 프랑스 당국은 자국민의 약 4분의 3이 주 1회 이상 무단 영업전화를 받는다고 추산했어요. 2024년에는 11개 소비자 단체가 공동으로 전면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고요. 거부 명단이 10년 동안 존재했는데도 상황이 이랬다는 게 이 법의 출발점이에요.

내용은 단순해요. 이제 사업자는 소비자의 사전 동의 없이 영업 목적으로 전화를 걸 수 없어요. 예외는 두 가지뿐이에요. 진행 중인 계약과 관련된 연락이거나, 미리 명확한 동의를 받은 경우예요. 신문·잡지 구독 권유는 별도로 예외를 뒀고요. 반대로 에너지 리모델링, 노후 주거 개조, 직업훈련계좌(CPF) 이 세 분야는 동의를 받았더라도 전화 영업이 전면 금지예요. 사기가 가장 많이 발생한 영역이거든요.

제재는 통화 한 건 기준으로 자연인 7만 5,000유로, 법인 37만 5,000유로가 상한이에요. 2026년 8월 11일 환율(1유로 약 1,637원)로 환산하면 각각 약 1억 2,000만 원, 약 6억 1,000만 원이에요. 상한이지 자동으로 부과되는 금액은 아니고, 프랑스 경쟁·소비·사기방지총국(DGCCRF)2이 조사 후 부과하며 제재 사실을 공표할 수 있어요. 취약자를 노린 경우에는 징역 5년에 50만 유로 또는 매출의 10%까지 올라가요.

그런데 실무자 입장에서 진짜 무거운 건 과징금이 아니에요. 동의 없이 건 전화로 체결된 계약은 무효예요. 팔았는데 매출로 남지 않는다는 뜻이죠. 과징금은 확률의 문제지만 계약 무효는 거래 자체의 문제라, 이쪽이 훨씬 빠르게 영업 조직의 행동을 바꿔요.

그리고 소비자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Bloctel에 등록할 필요도, 해지할 필요도 없어요. 침묵이 곧 거부가 됐거든요.


프랑스가 전화를 끈 날, 한국은 두 배가 됐어요

같은 시기 한국 숫자를 보면 방향이 반대예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2026년 5월 14일 발표한 「2025년 하반기 스팸 유통 현황」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월평균 스팸 수신량은 10.35통으로 직전 반기보다 약 30.8% 늘었어요. 이 중 음성 스팸이 4.26통으로 직전 반기의 두 배, 최근 5년간 최고치를 기록했고요. 광고 유형 1위는 통신 가입 권유였어요. 위원회는 2025년 7월 단말기유통법 폐지 이후 유통점의 음성 영업이 확대된 영향으로 분석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문자와 음성이 정반대로 움직였다는 점이에요. 같은 기간 문자 스팸 신고·탐지 건수는 1억 5,020만 건에서 1,288만 건으로 약 91% 줄었어요. 반면 음성 스팸 신고·탐지는 504만 건에서 873만 건으로 약 73% 늘었고요. 하나는 무너지고 하나는 치솟았어요.

phone왜 이렇게 갈렸을까요. 제도를 보면 답이 나와요. 정보통신망법 제50조는 전자적 전송매체로 영리 목적 광고를 보낼 때 수신자의 명시적 사전 동의를 요구해요. 한국은 문자·이메일·자동 발신에 관해서는 이미 옵트인3 국가예요.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하나 있어요. 방문판매법상 전화권유판매자4가 육성으로, 개인정보 수집 출처를 고지하면서 거는 전화는 이 동의 의무의 예외에 해당해요.

정리하면 이래요. 한국의 옵트인 체계에는 구멍이 딱 하나 뚫려 있고, 그 구멍의 이름이 ‘사람이 직접 거는 전화’예요. 물은 뚫린 곳으로 흘러요. 문자를 조이자 트래픽이 음성으로 이동한 거예요.

거부 장치는 있어요. 다만 프랑스가 오늘 폐기한 바로 그 형태예요. 공정거래위원회가 방문판매법 제42조에 근거해 2014년 구축하고 한국소비자원이 위탁 운영하는 두낫콜이 있고, 은행·보험·카드 등 12개 금융업권이 따로 운영하는 금융권 두낫콜이 별도로 있어요. 금융상품 권유는 공정위 두낫콜 대상에서 아예 제외돼요. 소비자는 두 군데에 각각 등록해야 하는 거죠.

속도는 더 아쉬워요. 사업자의 수신거부 대조 의무는 월 1회 이상이에요. 등록하고도 최대 30일은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금융권 두낫콜은 반영까지 최대 2주가 걸린다고 안내하고 있고요. 등록 절차, 대기 시간, 이원화된 시스템. 거부하려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이렇게 쌓여 있어요.


동의가 자산에서 재고로 바뀌면

프랑스 규제의 진짜 무게는 2026년 7월 23일 나온 시행령에 있어요. 여기서 동의의 사양이 정해졌거든요.

동의는 자유롭고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며 언제든 철회할 수 있어야 해요. 미리 체크된 박스는 무효이고, 약관 동의로 갈음할 수도 없어요.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수준이에요. 문제는 나머지 세 줄이에요.

  • 동의의 유효기간은 최대 1년이고 자동 갱신이 안 돼요
  • 소비자는 통화 도중 구두로도 동의를 철회할 수 있어요
  • 사업자는 동의 증빙을 최소 3년 보관하고, 요청 시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며, 입증책임은 사업자에게 있어요

이 세 줄이 마케팅 리스트의 회계 성격을 바꿔요. 지금까지 확보한 연락처는 사실상 무형자산처럼 취급됐어요. 한 번 모으면 계속 쓰는 거죠. 그런데 유효기간 1년에 자동 갱신 금지가 붙는 순간, 리스트는 매년 100% 감가되는 재고가 돼요. 쓰지 않아도 사라지고, 다시 채우려면 비용이 들어요.

원가표에서 바뀌는 항목은 이래요. 리스트 구매 단가가 있던 자리에 동의 획득 단가가 들어와요. 고객획득비용(CAC) 앞단에 항목이 하나 새로 생기는 셈이에요. 그리고 매년 돌아오는 재동의 캠페인이 일회성 지출이 아니라 고정비로 자리 잡아요. 통화 중 구두 철회가 가능하다는 조항은 더 골치 아파요. 세일즈 스크립트 안에 자산을 소각하는 스위치가 들어 있는 거니까요. 통화 품질이 나쁘면 그 통화에서 자산이 사라져요.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이 이 계산을 시작할 준비조차 안 돼 있다는 점이에요. 연락처 데이터는 여러 캠페인에서 흘러든 기록이 한 테이블에 섞여 있고, 취득 시점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언제 받았는지 모르면 언제 만료되는지도 알 수 없어요.

파장은 국경을 넘어요. 모로코 고용부 장관은 자국 콜센터에서 최대 5만 개 일자리가 위험하다고 의회에 보고했어요. 이 산업은 약 1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연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만들어요. 모로코 아웃소싱 업계 관계자는 프랑스 시장이 업계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해왔다고 밝혔고요. 물론 같은 관계자는 순수 텔레마케팅이 이제 전체 활동의 15~20% 수준이라며 다각화를 강조했어요. 다만 저는 이 숫자를 안심 신호로 읽지 않아요. 프랑스 소비자를 상대로 프랑스어로 전화를 거는 역량 위에 나머지 업무가 얹혀 있는 구조라서, 15~20%가 흔들리면 그 위층도 같이 흔들려요.

규제 관할권과 노동 관할권이 어긋날 때, 비용은 규제를 만든 나라 바깥에서 먼저 청구돼요.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된 조항 하나가 카사블랑카의 고용 계획을 다시 쓰게 만드는 구조예요.


오스왈드의 시선

GTM 전략을 짜면서 가장 자주 마주친 장면이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우리 DB 30만 건”을 자산처럼 이야기하는 순간이에요. 저는 그때 늘 같은 질문을 해요. 이 번호들은 어디서 왔고, 언제 동의를 받았고, 그 증빙이 어디 있나요. 명확한 답이 돌아온 경우는 드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동의를 CRM의 체크박스 필드가 아니라 원장(ledger)으로 관리하라고 권해요. 출처, 취득 시점, 만료일, 철회 이력이 건별로 남아야 해요. 입증책임이 사업자에게 넘어오는 순간, 관리되지 않은 리스트는 자산이 아니라 부채가 되거든요. 이 작업은 규제가 오기 전에 해두는 편이 훨씬 싸요. 소급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다만 이 규제가 성공하리라고 단정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독일은 2009년부터 유사한 금지를 시행했지만 무단 영업전화가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프랑스 소비자단체 UFC-Que Choisir 대표도 사기 세력이 방문판매 쪽으로 무대를 옮길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고요. 규제는 대체로 법을 지키는 쪽의 원가부터 올려요. 그래서 합법 아웃바운드가 먼저 줄고, 불법 통화는 한참 뒤에 줄어드는 순서가 나올 가능성이 커요.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프랑스처럼 금지하자”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우리는 이미 옵트인 체계를 갖고 있고, 문제는 열려 있는 예외 하나예요. 새 규제를 얹기 전에 그 구멍을 먼저 막는 게 순서예요. 그리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에요. AI 음성 에이전트가 통화당 원가를 더 낮추면, 소비자가 명단에 이름을 올려 막는 방식은 산술적으로 버틸 수 없거든요.


마치며

오늘 정리한 내용을 세 줄로 압축하면 이래요.

첫째, 프랑스는 무단 영업전화를 금지하면서 거부 등록 목록 자체를 폐기했어요. 거부의 비용이 소비자에게서 사업자에게로 이동했어요. 둘째, 시행령이 동의에 유효기간 1년과 입증책임을 붙이면서, 마케팅 리스트는 자산이 아니라 매년 감가되는 재고가 됐어요. 셋째, 한국은 이미 옵트인 국가인데 육성 통화 예외 하나가 열려 있고, 음성 스팸은 그 구멍으로 흘러 5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어요.

아웃바운드를 운영하고 계신다면 이번 주에 세 가지만 확인해 보시길 권해요. 우리 리스트의 번호는 어디서 왔는지, 동의를 언제 받았는지, 그 증빙이 지금 꺼낼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는지예요. 셋 중 하나라도 답이 막히면, 그 리스트는 아직 자산이 아니에요.

💬 지난 한 달 동안 받은 영업전화 중에서 “내가 동의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걸려온 전화가 몇 통이었나요? 어느 업종이었는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호에서 업종별로 모아 정리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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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Légifrance, 「소비자법전 제L.223-1조 이하: 전화 영업 동의」(2026년 8월 11일 시행 버전). 링크 ··· 조문 원문이에요. 예외 조항이 어디까지 열려 있는지 확인하려면 여기가 가장 정확해요.
  • 프랑스 경제·재정부(DGCCRF), 「기업에 적용되는 전화 영업 규칙」. 링크 ··· 동의 유효기간 1년, 증빙 3년 보관 같은 실무 사양이 정리돼 있어요. 사업자 관점에서 읽기 좋아요.
  • Service-Public.fr, 「전화 영업 금지: 새 규칙은 무엇인가」. 링크 ··· Bloctel 폐지와 예외 두 가지를 소비자 눈높이로 설명한 정부 안내예요.
  •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한국인터넷진흥원, 「2025년 하반기 스팸 유통 현황」, 2026년 5월 14일 발표. 링크 ··· 오늘 글의 한국 쪽 숫자는 전부 여기서 왔어요. 음성 스팸 항목만 따로 봐도 흐름이 보여요.
  • France 24, 「France bans unsolicited telemarketing calls to protect consumers」, 2026년 8월. 링크 ··· 모로코 콜센터 고용 영향은 이 기사가 가장 구체적으로 다뤘어요.

배경 지식

  • CNIL, 「전화를 이용한 상업적 프로스펙션 규칙」. 링크 ··· 개인정보 감독기구 관점에서 본 동의 요건이에요. GDPR과의 접점이 궁금하시면 이쪽이에요.
  • 공정거래위원회, 「전화권유판매 수신거부의사 등록시스템(두낫콜)」. 링크 ··· 등록해 보시면 금융상품이 왜 제외되는지, 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지 바로 체감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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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섭(오스왈드) 프로필 일러스트

필자 안광섭 (오스왈드)은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INLEVEL9 전략 컨설턴트입니다. 경력, 연구, 저서와 최신 활동은 저자 소개에서 계속 갱신합니다. 최근 소식 · 2026년 8월: 2026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 선정.

📝 용어 설명

각주

  1. Bloctel: 2016년 프랑스가 도입한 전화 영업 거부 등록 명단이에요. 소비자가 번호를 등록하면 사업자가 그 번호를 영업 대상에서 빼야 했어요. 2026년 8월 11일 자로 폐지됐어요.

  2. DGCCRF: 프랑스 경쟁·소비·사기방지총국이에요. 소비자 관련 법 위반을 조사하고 행정 제재를 부과하는 기관으로, 우리로 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 보호 기능에 가까워요.

  3. 옵트인 / 옵트아웃: 옵트인은 미리 동의를 받아야 연락할 수 있는 방식이고, 옵트아웃은 일단 연락하되 거부 의사를 밝힌 사람만 빼는 방식이에요. 거부하는 수고를 누가 부담하느냐가 갈리는 지점이에요.

  4. 전화권유판매: 방문판매법상 개념으로, 전화로 권유하거나 전화 회신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영업이에요. 사업자는 시·군·구에 신고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