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를 풀어도 진짜 전문가인지 알 수 없게 됐어요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 25명의 선언과 컨설팅 시장의 31%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비즈니스선언문에 ‘대리 지표’라는 말이 나와요
2026년 9월 11일, 필즈상 수상자 25명이 공동 선언문 하나에 이름을 올렸어요. AI 기업들이 수학 난제 풀이를 성능 지표로 삼는 방식이 수학이라는 학문의 목표와 심하게 어긋나 있다는 내용이에요. 1978년 수상자 피에르 들리뉴부터 2026년 수상자 위 덩까지 세대가 걸쳐 있고, 한국계 수학자 허준이 교수도 명단에 있어요.
선언문의 핵심은 비판이 아니라 한 줄의 정의예요. 문제를 푸는 일은 개념적 이해라는 진짜 목표에 도달했는지 재보기 위한 도구이자 대리 지표1일 뿐이라는 문장이에요. 도구를 목표로 착각하면 도구가 목표를 해친다는 거죠.
이틀 뒤인 9월 13일 기준으로 서명자는 4,432명까지 늘었어요. 서명 페이지는 ORCID 로그인이나 소속 기관 이메일 확인을 거쳐야 이름이 올라가고요. 대리 지표가 무너졌다고 말하는 문서조차, 서명한 사람이 진짜 연구자인지 확인하는 장치를 따로 달아둔 셈이에요.
저는 이 선언을 수학계 안의 사건으로만 읽지 못했어요. 같은 고장을 다른 시장에서 먼저 보고 있었거든요.
어려운 문제는 수학계의 측정 도구였어요
수학에서 유명한 난제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왔어요. 하나는 안쪽의 일이에요. 난제가 풀렸다는 건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과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신호였고, 수학자들은 발표와 토론과 정리를 거쳐 그 아이디어를 공용 도구로 바꿔왔어요.
다른 하나는 바깥쪽의 일이에요. 저는 갈루아 표현이 뭔지 설명하지 못해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풀렸다는 건 알아요. 난제는 수학을 모르는 사람도 실력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눈금이었어요.
선언문이 문제 삼는 건 AI가 난제를 푼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에요. 풀이가 급하게 공개되면서 제대로 된 정리도, 선행 연구 인용도, 아이디어를 떼어내 다듬는 과정도 빠진다는 점이에요. 서명자들은 여기서 귀속과 표절 문제가 생긴다고 적었어요. 결과는 나왔는데 그 결과를 이해하고 이어받을 사람이 사라지면, 눈금은 남고 눈금이 재던 것은 없어져요.
쉽게 말하면 수학자들이 말하는 위험하다는 건 중간과정 다 건너 뛰고 답만 덜렁 덜렁 쥐는 과정이 반복 되면 수학의 본질과 원리가 흐려진다는 것을 의미해요.
전문가를 가려내던 장치는 대부분 이런 대리 지표였고, AI는 그 지표를 흉내 내는 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들었어요.
가령 정답이 -1, 0, 1인 수학 문제가 있다고 하면 답을 맞출 확률은 33.3%겠지만 이 수학 문제를 풀 실력 있는 학생은 공식과 서술을 해서 문제를 풀 것이고 누구는 단답으로 찍어서 풀텐데 인공지능식 풀이가 성행하면 이제 누가 수학을 공부하겠냐는 거죠.
수학은 그 일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일 뿐이에요. 값이 매겨진 시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었고요.
자문 시장은 이미 자기신고로 굴러가고 있었어요
전문가 네트워크2라는 시장이 있어요. 투자사와 컨설팅펌이 특정 산업의 실무자에게 한 시간짜리 통화를 사는 곳이에요. 가이드포인트는 200만 명 이상, GLG는 100만 명이 넘는 전문가 풀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어요.
2025년 12월 4일, 이 업계를 연구하는 리서치펌이 자문에 참여한 전문가 1,368명을 설문한 결과를 냈어요. 응답자의 약 31퍼센트가 자신이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주제의 통화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답했어요. 1,368명 중 420명 남짓이에요. 보고서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어요. 전문성을 본인이 신고한다는 점, 요청을 24~48시간 안에 채워야 한다는 납기, 그리고 키워드로 사람을 고르는 매칭이에요.
여기서 한 번 짚고 갈 게 있어요. 자격 미달 통화가 생긴 원인 목록에 AI는 들어 있지도 않아요. 검증은 AI가 망가뜨린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자기신고에 기대고 있었어요. 같은 조사에서 고객이 한 건에 1,200달러를 내는 동안 전문가가 받는 몫은 청구액의 20퍼센트에 못 미친다고 나왔는데, 그 차액이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검증에 지불한 값이었던 셈이에요. 업계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자기응답 설문이라 수치는 넓게 읽어야 하지만, 방향까지 의심할 이유는 없어요.
전문가 네트워크가 통화 전후로 돌리는 컴플라이언스 절차는 촘촘해요. 다만 그건 미공개 중요정보가 오가는 걸 막는 장치예요. 이 사람이 그 시기에 그 일을 실제로 했는지, 지금 하는 말이 본인의 판단인지를 재는 장치가 아니고요.
사는 쪽과 파는 쪽이 같이 모델로 바뀌고 있어요
수요 쪽부터 보면 변화가 빨라요. 가이드포인트는 2026년 3월 26일 전문가 인터뷰 녹취록 10만 건을 넘겼다고 발표했고, 5월 5일에는 그 라이브러리를 MCP3로 클로드 안에 붙였어요. 8월 26일에는 12만 건 이상을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로 연결했고요. 월 5,000건씩 쌓이는 구조라 시간이 갈수록 커져요. 알파센스와 테구스는 사람 대신 AI가 진행하는 전문가 통화를 기존 대비 70퍼센트 저렴하다고 안내하고 있고, GLG도 AI가 진행하는 통화를 제공해요.
사람에게 물어서 얻은 답이 녹취록이 되고, 녹취록이 모델의 입력이 되고, 다음 질문은 사람 대신 모델에게 가요. 한 번 산 한 시간이 계속 다시 팔리는 자산으로 바뀌는 거예요.
값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돼요. 이미 쌓인 녹취록으로 답이 나오는 질문에는 통화를 살 이유가 없으니, 흔한 질문의 통화 단가부터 내려가요. 반대로 라이브러리에 없는 질문, 그러니까 아직 아무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판단에는 값이 붙고요. 이건 회사들이 발표한 사실이 아니라 지금 구조를 보고 제가 세운 예상이에요.
공급 쪽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요. 자문의 상당수는 서면으로 오가는데, 이 형식은 모델이 답하기에 가장 좋은 형식이에요. 화상으로 바꿔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요. 그래서 사는 쪽은 사람을 샀는지 모델을 샀는지 알기 어렵고, 파는 쪽은 자기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요. 양쪽 다 손해를 보는데도 거래는 그대로 일어나요.
그래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오면 남는 답은 하나예요. 정답이 아니라 겪은 일이요. 그런데 경험을 인증하는 방법이 참 애매해요. 세 층으로 나눠 보면 어디가 비어 있는지가 보여요.
| 층 | 증명할 수 있는 것 | 누가 확인하나 |
|---|---|---|
| 소속과 기간 | 어디서 몇 년 있었는지 | 회사, 학교, 기관 |
| 판단의 기록 | 언제 무엇을 정했고 무엇이 틀렸는지 | 지금은 본인뿐 |
| 결과의 귀속 | 그 성과가 내 판단 때문이었는지 | 확인 체계 없음 |
첫 줄은 확인이 되지만 실력을 말해주지는 않아요. 셋째 줄은 실력을 말해주지만 확인이 안 되고요. 그래서 실제 검증은 둘째 줄에서 갈려요. 연구자에게는 ORCID와 인용 기록이 이 자리를 메워주지만, 실무자에게는 그런 게 없어요.
같은 원리가 자문 통화 바깥에서도 그대로 작동해요. 경력기술서, 제안서, 포트폴리오, 면접 답변은 전부 대리 지표라서 이제 잘 만들어진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가려내지 못해요. 잘 쓴 문서가 실력의 증거였던 시절이 짧게 끝난 거죠. 한국처럼 서면 자료와 1회성 발표로 사람을 평가하는 관행이 강한 시장은 이 변화를 더 직접 맞게 되고요.
사는 쪽이라면 질문을 바꾸는 게 가장 싼 대응이에요. 시장 전망이나 구조 설명은 모델이 더 빠르고 자주 더 정확해요. 대신 그때 본인이 반대했던 결정, 실패한 건과 그 뒤에 바꾼 기준, 지금 이 답에서 틀릴 가능성이 가장 큰 대목을 물어보면 답의 성격이 달라져요. 특정 시점에 자기 이름을 걸고 한 선택과 그 대가는 검색으로 나오지 않으니까요. 파는 쪽이라면 그 선택과 대가를 시점이 찍힌 형태로 남겨두는 일이 곧 자산이 되고요.
이 선언을 적기조례로 읽는 시선도 있어요
반대 해석도 나와요. 1865년 영국은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걸어가도록 법을 만들었어요. 마차 쪽 이해관계가 새 기술의 속도를 늦춘 대표적인 사례로 불리죠. 필즈상 수상자들의 선언도 결국 자리를 잃는 쪽의 항의라는 읽기예요. 여기에 더해, 수학 문제 풀이는 앞으로 체스처럼 지적 유희로 남을 거라는 주장도 있고요.
선언문이 실제로 요구한 내용을 보면 두 해석의 거리가 드러나요. 적기조례는 기술을 쓰는 행위 자체를 규제했어요. 선언문은 AI가 진짜 수학적 이해를 넓힐 잠재력이 있다고 먼저 적어두고, 풀이를 급하게 공개하면서 정리와 인용과 귀속을 건너뛰는 방식을 문제 삼았어요. 요구가 향하는 지점이 기술이 아니라 발표 절차예요.
시점도 걸려요. 2002년에 폴 락하트라는 수학 교사가 쓴 「어느 수학자의 탄식」이라는 글이 있어요. 그는 학교 수학이 발견의 과정을 걷어내고 결과만 남겼다고 썼어요. 삼각형의 넓이가 밑변 곱하기 높이의 절반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 도달한 한 줄의 아이디어가 수학인데, 학교는 공식을 외우게 하고 끝낸다는 거예요. 수학 수업에 수학이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어요. 같은 불평이 24년 전에 이미 있었고, 그때 상대는 AI가 아니라 수학계 자신이 만든 교육과정이었어요. 새 기술이 나타나자 급히 꺼낸 방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예요.
다만 락하트를 불러오면 수학계 쪽도 편해지지 않아요. 그가 고발한 절차화된 수학, 정해진 형식에 맞춰 참과 거짓을 찍어내는 작업이 바로 지금 모델이 가장 잘하는 일이거든요. 그 형식을 표준으로 만들고 시험으로 채점해온 건 교육 체계와 학계였고요. 이번에 자동화된 건 수학적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수학적 사고 대신 채점하기로 한 형식이에요. **자문 시장도 똑같아요. 정해진 틀의 서면 리포트를 사고팔아 왔으니, 그 틀부터 자동화되는 게 당연해요. 저도 그래서 컨설팅 펌을 차리면서 가장 먼저한게 레포트를 팔지 않겠다고 한 거였거든요. 어차피 레포트는 인공지능이 금방 쓰니까요. 그 시간에 작동하는 PoC/MVP를 만들어 놓거나 워크샵을 운영하는게 나은거죠.
유희론 쪽은 오히려 이 글의 논지를 밀어줘요. 체스는 컴퓨터에 진 뒤에도 사람 리그가 남았어요. 다만 그 리그가 파는 건 관람이지 실력 증명서가 아니에요. 컴퓨터보다 약한 기사의 경기를 사람들이 돈 내고 보는 거죠. 문제 풀이가 유희가 된다는 말은 그 자리에서 실력 증명 기능이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고, 그게 바로 대리 지표가 사라지는 과정이에요. 자문 시장에는 관람료를 낼 사람이 없다는 점이 다를 뿐이에요.
오스왈드의 시선
저는 GLG와 실버레이크 같은 곳에서 전문가로 자문에 참여하고 있어요. 최근 그쪽 담당자들에게서 비슷한 고충을 들었어요. LLM이 퍼진 뒤로 전문가를 구별하는 방법이 거의 없어졌다는 이야기였어요. 서면 자문은 AI로 답변이 되어 버리고, 화상으로 진행해도 실시간으로 답하는 프론티어 모델이 많아진 게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이제 전문가를 검증하는 방식은 경험뿐인데, 저는 그 경험을 인증할 방법이 애매하다는 데서 계속 막혀요. 제가 어떤 회사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확인이 되지만, 그때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맞았는지는 제 말 말고는 근거가 없어요. 위 표의 둘째 줄을 스스로 채워두는 것 말고 지금 당장 제가 쓸 수 있는 수단을 아직 못 찾았어요.
한 가지는 분명해 보여요. 필즈상 수상자들이 지키려는 것과 자문 담당자가 고민하는 것이 같은 종류의 문제라는 점이에요. 둘 다 결과물의 품질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든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잃는 중이에요. 다만 수학계에는 논문과 인용과 소속이라는 검증 장치가 이미 있고, 실무 전문가 시장에는 자기신고밖에 없다는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시장이 더 먼저, 더 조용히 무너질 거라고 봐요.
마치며
대리 지표는 원래 실력을 재는 대신 쓰던 임시 도구였어요. 문제를 푸는 일, 서면 답변을 잘 쓰는 일, 유창하게 설명하는 일이 다 그랬고요. 그 임시 도구를 모델이 가져간 지금, 남는 건 겪은 일과 그때 내린 선택이에요. 문제는 그걸 증명할 체계가 아직 없다는 점이고요.
구독자님이 누군가의 전문성을 판단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면, 당분간은 답의 품질 말고 답이 만들어진 경로를 물어보는 쪽이 안전해요. 그 질문에 답이 막히는 상대가 실제로 늘고 있는지는 저도 계속 지켜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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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Math and AI, “A Severe Misalignment of AI in Mathematics”, 2026년 9월 11일. ··· 선언문 원문과 25명의 초기 서명자 명단, 서명 절차까지 한 페이지에 있어요
- Terence Tao, “A Severe Misalignment of AI in Mathematics”, What’s new, 2026년 9월 11일. ··· 선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서명자 본인의 짧은 설명이 붙어 있어요
- Woozle Research, “The State of the Expert Economy 2025”, 2025년 12월 4일. ··· 자격 미달 응답 31퍼센트의 분모와 원인 분석이 나와 있어요
- Guidepoint, “Guidepoint Launches MCP on Claude”, 2026년 5월 5일. ··· 전문가 통화 녹취록이 모델의 입력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회사가 직접 설명해요
배경 지식
- GLG, “Expert Calls”. ··· 컴플라이언스 절차가 무엇을 검사하고 무엇을 검사하지 않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 Paul Lockhart, “A Mathematician’s Lament”, 2002. ··· 25쪽짜리 원문이에요. 음악 교육 악몽으로 시작하는 첫 두 쪽만 읽어도 이번 선언의 뿌리가 보여요
- Guidepoint, “Guidepoint Accelerates Enterprise AI Transformation with Gemini Enterprise”, 2026년 8월 26일. ··· 녹취록 규모가 다섯 달 만에 어떻게 늘었는지 비교해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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