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유로짜리 소포가 그린 세계지도
셔츠·장난감·선글라스, EU의 새 계산법

들어가며
구독자님, 얼마 전 온라인에서 5유로짜리 티셔츠 한 장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고 해볼게요. 몇 주 뒤 도착한 상자에는 물건값과 별개로 3유로가 붙어 있어요. 그럼 티셔츠에 폰케이스, 선글라스까지 같이 담았다면요? 3유로가 아니라 9유로예요. 상자는 하나인데 청구서에는 세 번 찍혀요.
7월 1일부터 유럽연합이 시작한 새 관세 이야기예요. 대부분의 보도는 “테무·쉬인 잡는 관세”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요. 그런데 저는 이 3유로라는 숫자가 유난히 작다는 점이 오히려 걸렸어요. 상자 하나에 몇 유로 얹는다고, 연간 59억 개씩 쏟아지는 흐름이 정말 멈출까요? 숫자의 크기와 목표의 크기가 안 맞아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이건 세금을 걷으려는 조치가 아니에요. 물건이 ‘어디서 만들어져 어떤 경로로 국경을 넘는가’라는 지도 자체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에요. 3유로는 그 지도의 아주 작은 좌표 하나일 뿐이고요. 오늘은 그 지도를 같이 펼쳐볼게요.
📦 상자 하나에 세 번 찍히는 청구서
먼저 규칙부터 정확히 볼게요. 이번 관세의 핵심은 ‘소포당’이 아니라 ‘품목 유형당’이라는 점이에요. 이 한 줄에 정책의 의도가 거의 다 담겨 있어요.
지금까지 유럽연합은 150유로 이하 물건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았어요. 2008년에 만든 ‘데 미니미스1’ 면제라는 제도예요. 소액 소포 하나하나에 관세를 물리려면 걷는 돈보다 행정 비용이 더 드니까, 아예 면제하는 게 합리적이던 시절의 규칙이에요. 이름 그대로 “따지기엔 너무 작다”는 뜻이고요.
문제는 그 ‘시절’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예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자료를 보면, EU로 들어오는 소액 소포는 2022년 약 13억 개에서 2025년 약 59억 개로 4배 넘게 늘었어요. 하루로 치면 1,200만 개예요. 그중 90% 이상이 중국발이고요. 면제 제도를 설계하던 사람들은 이 정도 규모를 상상조차 못 했어요. 작은 예외로 뚫어둔 구멍이 어느새 정문보다 커진 셈이에요.
7월 1일부터는 150유로 이하 소포에도 품목 유형마다 3유로가 붙어요. 셔츠 한 장이면 3유로, 셔츠에 장난감에 선글라스면 세 품목이라 9유로예요. 같은 티셔츠 세 장은 한 품목이라 3유로고요. 이 글의 프리헤더에 적은 “셔츠·장난감·선글라스”가 바로 이 계산법이에요. 겉보기엔 소비자 지갑을 노린 것 같지만, 실제 과녁은 조금 다른 데 있어요.
이 규칙이 정확히 겨냥하는 건 테무·쉬인·알리익스프레스의 사업 모델이에요. 이들은 중국 창고에서 개별 주문을 하나씩 항공편으로 유럽 문 앞까지 직배송하는 방식으로 커졌어요. 그것도 관세를 한 푼도 안 내면서요. 유럽 안에서 정식으로 관세를 다 내고 경쟁하던 H&M이나 자라 같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어요. 같은 옷을 팔아도 한쪽은 관세를 내고 한쪽은 안 내니까요. 유럽연합이 “불공정 경쟁”이라고 부른 게 바로 이 지점이에요.
유럽연합이 내건 명분은 하나 더 있어요. 집행위원회는 이번 조치로 유럽 도심 상권의 ‘공동화’를 막고 싶다고 했어요. 값싼 직구가 밀려들면서 동네 상점이 하나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있던 일자리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무너진다는 문제의식이에요. 관세 이야기 뒤에는, 사실 ‘거리의 풍경’이 바뀌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는 거죠. 3유로가 다루려는 게 단순히 세금이 아니라는 첫 번째 신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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