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보고서가 챗봇 말투를 가르쳤다
이코노미스트가 120만 단어를 세어 확인했어요

들어가며
구독자님, 요즘은 긴 줄표 하나만 보여도 “이거 AI가 썼네”라는 댓글이 달려요. 영어권에서 em dash라고 부르는 그 부호는 어느새 기계의 지문 취급을 받고 있죠. 그런데 이코노미스트가 사람 글과 AI 글 120만 단어를 나란히 놓고 세어봤더니, 정작 ChatGPT는 이제 사람 필진보다 줄표를 덜 쓰는 것으로 나왔어요. 사냥꾼들만 낡은 몽타주를 들고 있는 셈이에요.
그럼 진짜 지문은 뭘까요. 그리고 그 지문은 어디서 왔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지금 AI 문체의 원산지는 AI가 아니라 사람이 쓴 글이에요. 그중에서도 회사 보고서와 논문처럼, 격식을 차려 검토받으려고 쓴 글이요.
지문이 이사하는 걸 아무도 몰랐어요
실험 설계부터 볼게요. 이코노미스트는 자사 기사의 요약본만 주고, ChatGPT, Claude, Gemini, Grok 네 모델에게 웹 검색 없이 같은 주제의 기사를 다시 쓰게 했어요. 이렇게 모은 사람 글과 기계 글을 문장 5만 5,940개, 단어 120만 개 규모로 비교했고요. 단행본으로 치면 열다섯 권쯤 되는 분량이에요. 자기네 문체가 유별날 가능성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의 2018~2022년 기사 평균, 그리고 1950~2022년 베스트셀러 소설 발췌를 대조군으로 세워 걸러냈어요.
첫 번째 발견은 유행어의 세대교체예요. 한때 AI 글의 상징이던 delve(파고들다)와 tapestry(태피스트리)는 최신 모델에서 거의 사라졌어요. 대신 significant, increasingly, consequences 같은 다음절 단어가 그 자리를 채웠고요. 특정 단어 하나로 AI를 잡아내는 방식은 유통기한이 몇 달이라는 뜻이에요.
두 번째 발견이 줄표 반전이에요. 최신 업데이트 기준으로 사람보다 줄표를 많이 쓰는 모델은 Claude 하나뿐이었어요. ChatGPT는 이 연구에 등장하는 모든 필진, 그러니까 사람까지 포함해서 가장 적게 썼고요.
그럼 지금 시점의 진짜 지문은 뭘까요. 네 가지로 요약돼요.
어휘가 무거워요. 여덟 글자가 넘는 긴 단어를 네 모델 모두 사람보다 많이 써요. interdependence 같은 희귀어, parameter나 methodology 같은 과학 어휘도요. 동사를 명사로 바꾸는 명사화1도 뚜렷해요. expand라고 하면 될 걸 expansion으로 만들어 쓰는 식이죠.
문장부호가 사라져요. 쉼표와 세미콜론을 사람보다 덜 쓰고, 괄호는 거의 안 써요. 전문가를 인용하지 않으니 따옴표도 드물고요.
문장이 길고 리듬이 단조로워요. 가장 남용하는 단어가 접속사 and예요. 문장 길이의 변화 폭이 사람 글보다 좁아서, 짧은 문장으로 탁 끊어주는 순간이 좀처럼 없어요.
수사 공식에 기대요. “X가 아니라 Y다” 구문은 Claude가, 셋을 묶어 말하는 rule of three는 ChatGPT가 사람보다 눈에 띄게 많이 써요.
넷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없다는 거예요. 인용이 없으니 따옴표가 없고, 끼어드는 부연이 없으니 괄호가 없고, 호흡을 바꿀 이유가 없으니 문장 길이가 고르죠. 혼자 말하는 글의 통계적 초상인 셈이에요.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결정적인 그래프가 하나 있어요. 전형적인 AI 언어의 사용률을 이코노미스트 기사 기준 1로 놓고 재면, 2024년의 ChatGPT는 6배 수준이었는데 최신 모델들은 2~3배 안팎까지 내려왔어요. 업데이트마다 사람 글 쪽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지금 적은 이 목록도 몇 달 뒤엔 낡을 수 있어요.
움직이는 표적을 탐지기가 쫓다가 애먼 사람을 잡는 문제는 지난 호에서 다뤘어요. 오늘은 반대 방향의 질문을 따라가 볼게요. 이 문체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1946년에 이미 나온 명세서예요
이코노미스트는 이 어휘 목록에 이름을 하나 붙였어요. 조지 오웰이 말한 ‘허세 부리는 문체(pretentious diction)‘라고요.
오웰은 1946년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당대의 나쁜 글을 해부했어요. 그가 뽑은 증상은 이래요. 단순한 진술을 복잡한 단어와 전문용어로 치장하는 습관, 동사 하나면 될 자리를 명사구로 늘리는 버릇, 과학적 공정함의 외피를 씌우는 어휘, 그리고 라틴어나 그리스어에서 온 단어가 토박이 색슨어 단어보다 격이 높아 보인다는 믿음이요.
이 목록을 위의 AI 지문 옆에 놓아보세요. 긴 라틴계 단어는 오웰의 ‘치장’과, 명사화는 그가 ‘가짜 팔다리’라고 부른 명사구 습관과, 과학 어휘는 ‘공정함의 외피’와 하나씩 맞물려요. 실제로 이번 분석에서도 네 모델은 사람보다 라틴계 접미사가 붙은 단어를 더 많이 썼어요. 80년 전에 작성된 나쁜 글의 명세서가, 2026년 AI 문체의 명세서로 그대로 쓰이고 있는 거예요.
오웰의 진단에서 곱씹을 대목은 따로 있어요. 그는 이런 문체가 게으름의 산물만은 아니라고 봤어요. 말하기 곤란한 것을 말해야 할 때, 안개 같은 단어와 수동태가 방패가 된다고요. 명사화가 대표적이에요. ‘제가 이렇게 결정했습니다’를 ‘해당 방안의 추진이 결정되었습니다’로 바꾸는 순간, 문장에서 행위자가 사라져요. 격식 문체가 관청과 회사에서 유독 오래 살아남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있어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책임을 흐리는 데 쓸모가 있어서예요. 80년 전 관청 문서의 생존 전략을 기계가 문체째 물려받은 셈이죠.
오웰은 진단만 하지 않고 처방도 남겼어요. 여섯 가지 원칙 중 세 개만 옮기면 이래요. “짧은 단어로 되면 긴 단어를 쓰지 마라. 잘라낼 수 있는 단어는 잘라내라. 능동태로 쓸 수 있으면 수동태를 쓰지 마라.” 위의 AI 지문은 이 세 원칙을 정확히 뒤집은 목록이에요.
여기서 짚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어요. 오웰이 겨눈 과녁은 기계가 아니었어요. 관료와 정치인과 학자의 글이었죠. 명세서가 먼저 있었고, 그 명세서대로 쓰는 기계는 80년 뒤에 나왔어요. 그렇다면 기계는 이 문체를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스승을 찾았는데 거울이었어요
용의자는 둘이에요.
첫 번째는 교과서, 그러니까 학습 데이터예요. 모델이 읽고 자란 텍스트는 인터넷에 축적된 글인데, 그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일상 대화가 아니라 편집을 거친 격식 문어예요. 논문, 기사, 보고서, 백과사전 같은 것들이요. 줄표든 라틴계 어휘든, AI의 버릇이라고 알려진 것 상당수는 사실 격식 문어의 통계적 습관이에요.
그런데 교과서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플로리다주립대의 톰 유젝과 지나 워드는 과학 논문 초록에서 급증한 delve, intricate, underscore 같은 단어 21개를 추려낸 뒤, 왜 하필 이 단어들이 과용되는지를 추적했어요. 모델 구조에서도, 알고리즘에서도, 학습 데이터에서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남은 유력한 용의자가 두 번째, 사람의 피드백이에요.
RLHF2라고 부르는 이 과정에서는 모델이 내놓은 답 여러 개를 사람 평가자가 비교해 더 나은 쪽을 고르고, 모델은 그 선호를 학습해요. 문제는 사람이 무엇을 고르느냐예요. 몇 초 만에 스치듯 내리는 평가에서 이기는 글은, 정확한 글이라기보다 있어 보이는 글이에요.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유젝의 설명도 같은 방향이에요. 모델은 사람들이 인상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집어 들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내려놓는다고요.
내려놓는 속도를 보여준 게 바로 줄표예요. 줄표가 AI 조롱거리가 되자, 다음 업데이트에서 ChatGPT의 줄표는 급감했어요.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관찰한 장면이 재미있는데요. 예전 모델은 줄표 남용을 묻는 질문에 줄표를 섞어가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지금 모델은 아껴 써야 할 부호라고 점잖게 답한다고 해요. 문체가 여론을 몇 달 단위로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오해는 하나 걷고 갈게요. 사람 글에 가까워진다는 게 좋은 글이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코노미스트도 같은 단서를 달았어요. 수치상 거리는 좁혀졌지만 AI 산문은 여전히 명료함과 우아함이 부족하고, 틀에 박힌 공식을 반복한다고요. 통계가 잡아내는 건 지문이지 문장의 질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지문이 흐려질수록 판별의 기준은 결국 글의 완성도 쪽으로 되돌아가요. 유젝 연구팀이 짚은 장벽도 하나 남아 있어요. 모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공개되지 않아, 이런 인과를 끝까지 파고드는 연구 자체가 어렵다는 거예요.
이제 그림이 맞춰져요. 격식 문어를 교과서로 먹였고, 있어 보이는 답에 보상을 줬고, 조롱이 쏟아지면 지웠어요. 세 단계 모두에서 기준을 댄 쪽은 사람이에요. AI 문체는 발명품이 아니라 증류물이고, 원액은 우리가 쓰고 통과시켜 온 글이에요. 업데이트마다 AI 글이 사람 글에 가까워진다는 그래프는 탐지가 어려워진다는 예고이기도 하지만, 더 곱씹게 되는 쪽은 이거예요. 애초에 둘 사이의 거리가, 우리 생각만큼 멀지 않았다는 것이요.
오스왈드의 시선
저는 20년 넘게 전략 컨설팅 문서를 쓰고, 읽고, 승인받아 왔어요. 그 세계의 공용어를 떠올려 보면 이래요. ‘고친다’가 아니라 ‘개선 방안을 수립한다’, ‘쓴다’가 아니라 ‘활용도를 제고한다’. 영어에서 라틴계 어휘가 하던 역할을, 한국어 문서에서는 한자어 명사화가 해요. 짧은 고유어 동사는 어쩐지 격이 낮아 보인다는 무언의 규칙이 결재선 위에 흐르죠.
그리고 제가 관찰하기로는, AI가 쓰는 한국어도 정확히 그 방향으로 기울어요. ‘~를 통해’, ‘~적 측면에서’, ‘다양한’,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번역체라고 부르는 그 말투의 상당 부분은 사실 보고서체예요.
오웰의 목록을 읽다가 뜨끔했던 건 그래서예요. 그건 AI 문체의 명세서이기 전에, 제가 예전에 쓴 제안서들의 명세서였거든요. 있어 보이는 글이 결재를 통과하는 인센티브가 먼저 있었고, AI는 그 인센티브를 대규모로 증류했을 뿐이에요. 그러니 ‘AI 냄새 지우는 법’ 같은 꼼수 목록을 찾을 일이 아니라고 봐요. 방향은 반대예요. 오웰의 원칙은 원래 탐지 회피술이 아니라 좋은 글쓰기 지침이었고, 지금 필요한 것도 그쪽이에요. 짧은 단어, 살아 있는 동사, 잘라낼 수 있으면 잘라내기.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 줄표는 낡은 몽타주예요. 지금의 지문은 무거운 어휘, 명사화, 문장부호 실종, 수사 공식이에요.
- 이 지문은 오웰이 1946년에 정리한 나쁜 글의 명세서와 겹쳐요. 새로 생긴 문체가 아니에요.
- 원인은 격식 문어로 짜인 교과서와, 있어 보이는 글에 보상을 준 사람의 피드백이에요.
오늘 하나만 실험해 보세요. 지금 쓰고 계신 문서에서 명사화 표현 하나를 동사로 되돌리는 거예요. ‘개선 방안 수립이 필요합니다’를 ‘이렇게 고치겠습니다’로요. 문장이 짧아지고 책임이 선명해지는 게 바로 느껴지실 거예요.
회사에서 유독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는 표현이 있다면 댓글로 제보해 주세요. 사례가 모이면 다음에 ‘한국어 보고서체 사전’으로 정리해 볼게요.
💬 결재를 통과시키는 그 표현, 댓글로 제보해 주세요 📨 보고서 쓰는 동료가 있다면 이 글을 전달해 주세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The Economist, “How to spot AI writing,” 2026. 링크 ··· 오늘 글의 뼈대가 된 분석이에요. 문장 5만 5,940개를 비교한 차트 원문을 직접 보시면 모델별 차이가 훨씬 선명해요.
- Tom S. Juzek and Zina B. Ward, “Why Does ChatGPT ‘Delve’ So Much? Exploring the Sources of Lexical Overrepresentation in Large Language Models,” Proceedings of COLING 2025, 2025. 링크 ··· 구조, 알고리즘, 데이터에서 원인을 못 찾고 사람 피드백을 유력 후보로 지목한 연구예요. 실험 설계 부분이 백미예요.
- George Orwell,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Horizon, 1946. 링크 ··· 여섯 원칙이 담긴 원문이에요. 분량이 짧으니 원문으로 읽어보시길 권해요.
배경 지식
- Tom S. Juzek et al., “Word Overuse and Alignment in Large Language Models,” arXiv:2508.01930, 2025. 링크 ··· 사람 피드백 학습이 어휘 과용의 가장 유력한 기여 요인이라고 재확인한 후속 연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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