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제216호

같은 사람인데 이름을 바꾸니 거짓이 됐어요

대체가 깨지는 자리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이었어요

같은 사람인데 이름을 바꾸니 거짓이 됐어요

들어가며

구독자님, 16세기 베네치아에 조르조네라는 화가가 있었어요. 본명은 조르조 바르바렐리고요. 조르조네는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에요. ‘큰 조르조’라는 뜻이거든요. 덩치가 커서 붙은 이름이죠.

그래서 이런 문장이 성립해요.

  • 조르조네는 덩치 때문에 그렇게 불렸어요. → 참
  • 바르바렐리는 덩치 때문에 그렇게 불렸어요. → 거짓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름 하나 바꿨더니 참이 거짓이 됐어요.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오는데, 정확히 어디가 잘못됐는지 짚으려면 생각보다 막혀요.

Giorgione Pala di Castelfranco조르조네의 <카스텔프랑코의 마돈나> 1505년 작품

1971년, MIT의 철학자 리처드 카트라이트가 이 문제에 답을 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둘이 같다는 것과, 서로 바꿔 써도 된다는 것은 다른 원칙이고,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보장하지 않아요. 저는 이 55년 된 논증이 지금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대체 논쟁의 구조를 꽤 정확히 설명한다고 봐요.


우리가 하나로 알던 원칙은 사실 두 개였어요

보통 라이프니츠의 법칙1이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그런데 그 이름 아래 서로 다른 두 문장이 섞여 있어요.

첫째, 같다는 원칙이에요. x와 y가 같은 것이라면, x가 가진 성질은 y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세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둘째, 바꿔 써도 된다는 원칙이에요. x와 y가 같다면, 어떤 문장에서든 한쪽을 다른 쪽으로 바꿔 넣어도 참과 거짓이 변하지 않아요. 이건 말에 대한 이야기고요.

대부분은 이 둘을 같은 말이라고 여겨요. 말은 세계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라고 전제하니까요. 그런데 조르조네 문장은 두 번째 원칙이 그냥 틀렸다는 걸 보여줘요. 반례가 하나만 있어도 원칙은 무너지는데, 우리는 방금 하나를 봤거든요.

그럼 첫 번째 원칙도 같이 무너질까요. 그러려면 조르조네는 가졌는데 바르바렐리는 못 가진 성질이 실제로 있어야 해요. 그게 뭘까요.

‘덩치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는 성질일까요. 여기서 걸려요. ‘그렇게’가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문장 밖에서는 정해지지 않거든요. 조르조네라고 불린다는 뜻인지, 바르바렐리라고 불린다는 뜻인지는 그 문장에 어떤 이름이 들어와 있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앞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렇게’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못해요.

카트라이트가 짚은 지점이 여기예요.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이었어요. 그 문장은 한 사람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에 대해서도 동시에 말하고 있었어요. 이름이 붙였다 뗐다 하는 스티커가 아니라, 문장을 이루는 부품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대치가 깨졌다고 해서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 자리가 사람만 쓰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뜻일 뿐이에요.

멀리 갈 것도 없어요. 계약서 서명란을 떠올려 보세요.

  • 그 계약서에는 대표이사가 서명했어요.
  • 그 계약서에는 김민수 씨가 서명했어요.

김민수 씨가 그 회사 대표이사라고 해도, 두 문장은 같은 문장이 아니에요. 앞의 문장에서는 회사가 묶이고 뒤의 문장에서는 개인이 묶여요. 법무팀이 서명란의 직함 표기에 유난히 예민한 이유가 이거예요. 사람이 같아도 그 자리에 어떤 이름으로 들어갔느냐가 효력을 바꾸거든요.


명왕성이 논증을 대신 증명해줬어요

카트라이트가 든 두 번째 예시는 더 재미있어요.

  • 9는 필연적으로 7보다 커요. → 참
  • 행성의 수는 필연적으로 7보다 커요. → 거짓

논문이 쓰인 1971년 기준으로 행성은 9개였어요. 9와 행성의 수는 같은 것이었죠. 그런데도 한쪽만 참이에요.

이유는 ‘필연적으로’2라는 말에 있어요. 9가 7보다 크다는 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갔든 참이에요. 반면 행성이 몇 개인지는 그냥 우연이에요. 태양계가 조금 다르게 만들어졌다면 6개였을 수도 있어요.

카트라이트의 진단은 이래요. 두 번째 문장은 사실 두 가지로 읽혀요.

첫째로 읽으면, “행성의 수는 7보다 크다”라는 문장 자체가 반드시 참이라는 뜻이에요. 이건 거짓이에요. 둘째로 읽으면, 행성의 수는 하나로 정해져 있고 바로 그 수가 반드시 7보다 크다는 뜻이에요. 그 수가 9니까 이건 참이고요.

한 문장이 애초에 두 문장이었던 거예요. 원칙이 깨진 게 아니라, 말이 자기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숨기고 있었을 뿐이에요. 철학에서는 이 구분을 데 레와 데 딕토3라고 불러요.

여기서 제가 이번 자료를 읽다가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이 나와요. 카트라이트는 9와 행성의 수가 같다는 것을 그냥 천문학이 알려주는 사실이라고 적고 지나가요. 논증의 배경으로만 쓴 거죠.

그리고 35년 뒤인 2006년, 국제천문연맹이 명왕성을 왜소행성으로 재분류하면서 행성은 8개가 됐어요. 논문이 딛고 선 전제가 논문 바깥에서 거짓이 된 거예요.

그런데 이게 논증을 무너뜨리지 않아요. 오히려 완성해요. ‘행성의 수’라는 표현은 애초에 특정한 값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자리에 들어가는 값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게 카트라이트의 논점이었거든요. 그가 말로 증명한 것을 태양계가 실물로 한 번 더 보여준 셈이에요.

이 구분, 회사 문서에서 매일 보게 돼요. “1위 고객사를 지킨다”는 목표를 예로 들어볼게요. 여기서 1위 고객사가 지금 1위인 그 회사를 뜻하는지, 아니면 그때그때 1위인 누구든을 뜻하는지에 따라 전략이 통째로 달라져요. 앞이면 그 회사 전담팀을 붙이는 게 맞고, 뒤면 순위가 바뀔 때마다 자원을 옮기는 게 맞아요. 그런데 목표 문장은 그 차이를 말해주지 않아요. “핵심 인재를 붙잡는다”도 똑같고요.


그래서 대체 논쟁이 계속 헛돌아요

이제 본론이에요.

요즘 대체 논쟁은 거의 한 가지 문법으로 진행돼요. AI가 사람만큼 잘하느냐는 질문이죠. 벤치마크 점수, 정확도, 합격률, 사람 대비 몇 퍼센트. 그리고 그 아래에 말해지지 않은 전제가 깔려 있어요. 성능이 같아지면 바꿔 쓸 수 있다는 전제요.

room카트라이트가 55년 전에 무너뜨린 게 정확히 이 전제예요. 같다는 게 참이어도, 바꿔 써도 된다는 건 따라오지 않아요.

이걸 받아들이면 진단이 달라져요. 대체를 시도했다가 잘 안 됐을 때 우리는 보통 성능이 아직 부족해서라고 결론내고 다음 모델을 기다려요. 그런데 다른 가능성이 있어요. 그 자리가 처음부터 결과물만 쓰는 자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요.

그럼 어떤 자리가 이름까지 쓰는 자리일까요. 제가 실무에서 구분해온 기준은 네 가지예요.

  • 책임이 기록되는 자리. 감사 의견, 의료 판단, 법률 자문, 회계 서명처럼 누가 했는지가 결과와 별개로 남아야 하는 일이에요.
  • 관계가 결과물의 일부인 자리. 장기 교섭이나 상담처럼, 그 사람이라서 상대가 응하는 부분이 성과에 섞여 있는 일이에요.
  • 사람이 자라는 자리. 주니어가 맡던 반복 업무가 여기 들어가요. 지금 지워도 오늘은 아무 일이 없지만, 5년 뒤에 시니어가 만들어지지 않아요.
  • 나중에 이유를 물어야 하는 자리.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사후에 설명할 사람이 필요한 일이에요.

이 네 가지가 걸리지 않은 자리는 성능이 80퍼센트만 돼도 대체가 일어나요. 이미 그렇게 되고 있고요. 반대로 걸린 자리는 성능이 100퍼센트가 돼도 대체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체 여부를 가르는 건 성능 임계치가 아니라 자리의 성질이에요.

이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미 여러 직역에서 제도로 굳어져 있거든요. 진단서에는 진단한 의사의 면허번호가 들어가고, 회계감사 보고서에는 담당 회계사가 서명하고, 변호사 의견서에는 작성한 변호사 이름이 남아요. 왜 그럴까요. 판단이 틀렸을 때 물을 사람이 필요해서예요. 여기서 이름은 결과물을 예쁘게 만드는 장식이 아니라, 결과물이 효력을 갖게 만드는 조건이에요.

그래서 이 자리들에서는 도구가 아무리 좋아져도 구조가 잘 안 바뀌어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대체가 아니라 재배치에 가까워요. 초안을 기계가 쓰고 서명은 사람이 하는 식으로요. 겉으로는 사람이 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만드는 일에서 확인하는 일로 바뀌어 있어요. 그리고 이 변화는 조직도에도 성과 지표에도 잘 안 잡혀요. 저는 지금 많은 조직이 겪는 혼란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온다고 봐요. 대체가 안 됐다고 안심하는 사이, 일의 내용이 조용히 바뀌어 있는 거예요.

여기서 반대쪽도 정직하게 봐야 해요. 우리가 “여기는 사람 이름이 필요해”라고 믿는 자리 중 상당수는 검증된 적 없는 관성일 수 있거든요. 대면이어야 한다, 경력자여야 한다, 사람이 최종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 실제 근거 없이 반복되는 경우를 저는 여러 번 봤어요. 카트라이트도 대치 원칙의 반례를 인정하는 동시에, 가짜 반례를 하나하나 해체했어요. 두 작업을 같이 한 거예요. 지금 필요한 것도 딱 그거라고 생각해요. 진짜 대체 불가능한 자리와, 그냥 익숙한 자리를 갈라내는 일이요.


오스왈드의 시선

AI 도입 검토를 돕다 보면 제안서와 품의서를 꽤 많이 읽게 돼요. 그 문서들에 거의 항상 들어 있는 표가 하나 있어요. 성능 비교표예요. 정확도, 처리 시간, 건당 비용, 사람 대비 몇 퍼센트.

그리고 거의 매번 비어 있는 칸이 하나 있어요. 이 결과물은 누구 이름으로 나가는가.

저는 이 칸이 비었다는 게 단순한 문서 누락이 아니라고 봐요. 조직이 그 자리를 결과물만 나오는 자리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도입 후에 기대만큼 안 굴러가면, 회의실에서 나오는 첫 문장이 대부분 비슷해요. 모델이 아직 약한 것 같다는 말이요.

절반은 맞는 진단이에요. 나머지 절반은 틀렸고요. 그 자리가 원래 이름까지 쓰던 자리였다면, 모델이 두 배 좋아져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문제가 다시 나요. 성능을 올려서 풀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서명을 어디에 놓을지 다시 설계해서 풀 문제거든요.

그래서 요즘 저는 검토 초반에 질문을 하나 바꿔서 던져요. 이걸 AI로 대체할 수 있느냐고 묻는 대신, 이 일의 결과물에 누구 이름이 붙어 있고 그 이름이 왜 필요한지를 먼저 물어봐요. 답이 바로 나오면 대체 가능성이 꽤 높은 자리예요. 답이 막히거나 “원래 그렇게 해왔다”로 끝나면, 그건 대체 이전에 그 자리 자체를 다시 볼 때가 됐다는 신호에 가깝고요.

참고로 저는 매주 기술과 경제와 인문을 교차해서 분석하는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어요. 오늘처럼 오래된 논문 하나를 지금 문제에 대보는 작업을 자주 해요.


마치며

정리할게요.

첫째, 둘이 같다는 원칙과 바꿔 써도 된다는 원칙은 다른 원칙이에요. 조르조네와 바르바렐리는 같은 사람인데도 문장에서 서로를 대신하지 못해요.

둘째, 대치가 깨지는 이유는 대상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 문장이 대상 말고 이름까지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셋째, 그러니 대체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성능이 몇 퍼센트냐가 아니라, 그 자리가 결과물만 쓰는 자리냐 이름까지 쓰는 자리냐예요.

이번 주에 하나만 해보시길 권해요. 지금 맡고 계신 일 중 하나를 골라서, 그 결과물에 누구 이름이 붙는지와 그 이름이 왜 필요한지를 두 줄로 적어보세요. 두 줄이 잘 써지면 그 일의 상당 부분은 이미 넘길 수 있는 일이에요. 두 줄이 안 써진다면, 넘길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정리해본 적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커요.

구독자님 일 중에 결과물은 똑같이 나오더라도 꼭 본인 이름으로 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어떤 일이고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사례가 모이면 다음 호에서 “이름이 필요한 일과 아닌 일”을 실제 직무별로 갈라보는 작업을 해볼게요.


💬 결과물이 같아도 본인 이름으로 나가야 하는 일이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다음 호에 반영해볼게요. 📨 AI 도입 검토를 맡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이 글을 전달해 주세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Cartwright, Richard, “Identity and Substitutivity”, in Milton K. Munitz (ed.), Identity and Individuation, New York University Press, 1971, pp. 119-133. 링크 ··· 오늘 글의 뼈대예요. 조르조네 논증은 122~125쪽, 행성의 수 논증은 126~131쪽에 있어요. 기호가 부담스러우시면 122쪽부터 세 쪽만 읽으셔도 핵심은 다 잡혀요.
  • Kripke, Saul, “Identity and Necessity”, 같은 책, pp. 135-164. ··· 카트라이트 바로 다음 장이에요. 같은 문제를 정반대 방향에서 풀어요. 두 글을 나란히 읽으면 1970년대 초 이 논쟁의 온도가 그대로 느껴져요.
  • Quine, W. V. O., From a Logical Point of View, 2nd ed., Harper and Row, 1963, p. 139. ··· 카트라이트가 문제 삼은 대치 원칙의 표준 진술이 이 쪽에 나와요. 조르조네 사례를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온 것도 콰인이에요.

배경 지식

  • Frege, Gottlob, “Über Sinn und Bedeutung”,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und philosophische Kritik, vol. 100, 1892, pp. 25-50. ···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이 왜 다른 문장을 만드는지, 이 논쟁의 출발점이에요. 샛별과 개밥바라기 이야기가 여기서 나와요.
  • MIT Department of Philosophy, “Richard Cartwright”. 링크 ··· 저자의 전체 저작 목록이에요. 이번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1979년의 「Indiscernibility Principles」로 이어가시면 좋아요.

함께 읽으면 좋은 지난 호

  • 20와트짜리 뇌를 꺼두는 사람들 ··· 기계가 뇌를 이긴 건 성능이 아니라 복제 가능성이었다는 이야기예요. 오늘 글의 ‘자리’ 논의와 겹쳐 읽으면 좋아요.
  • 러다이트가 부순 건 기계가 아니었어요 ··· 기술이 노동을 없애는 게 아니라 재배치한다는 분석이에요. 오늘 글에서 말한 ‘이름이 붙는 자리’가 재배치 과정에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보여줘요.

안광섭(오스왈드) 프로필 일러스트

필자 안광섭 (오스왈드)은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INLEVEL9 전략 컨설턴트입니다. 경력, 연구, 저서와 최신 활동은 저자 소개에서 계속 갱신합니다. 최근 소식 · 2026년 8월: 2026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 선정.

📝 용어 설명

각주

  1. 라이프니츠의 법칙: 같은 것끼리는 구별되지 않는다는 원칙이에요. 두 대상이 정말 같다면 어느 하나만 가진 성질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인데, 이 원칙을 말에 적용한 판본과 세계에 적용한 판본이 서로 다르다는 게 오늘 글의 핵심이에요.

  2. 필연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굴러갔더라도 반드시 그랬을 것이라는 뜻이에요. 지금 참이라는 것과는 달라요. 오늘 서울이 맑은 건 참이지만 필연은 아니고, 3 더하기 4가 7인 건 필연이에요.

  3. 데 레와 데 딕토 (de re / de dicto): 한 문장을 대상에 대한 말로 읽을지, 문장 자체에 대한 말로 읽을지의 구분이에요. “행성의 수는 필연적으로 7보다 크다”를 그 수 자체의 성질로 읽으면 참이고, 저 문장이 반드시 참이라는 뜻으로 읽으면 거짓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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